[문화재탐방/서울] 약현성당 (藥峴聖堂) 사적 제252호

2012. 2. 26. 06:00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문화재탐방/서울] 약현성당 (藥峴聖堂) 사적  제252호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건물로 1892년 프랑스인 신부 코스트가 설계·감독하였다.

길이 약 32m, 너비 12m의 십자형 평면 구조이며 비교적 소규모의 성당이다. 옆면 창은 처마 높이가 낮아 뾰족아치가 아닌 원형아치로 되어 있으나, 앞면의 출입구와 옆면 좌우로 돌출한 출입구 창 부분이 각기 뾰족아치를 이루어 고딕 모양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축이라는 점과, 순수한 고딕양식은 아니지만 벽돌로 된 고딕성당으로 후세의 한국 교회건축의 모범이 되었다. 그리고 천주교 박해시대에 수많은 순교자를 낸 서소문 밖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 있다는 장소의 역사성으로 한국 천주교회사와 건축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성당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처음 조선조 고종27(1890)년 순화동에 강당을 짓고 포교하다가 정가밀로신부가 책임자로 부임하여 약현 언덕위 김군선(金君善)소유의 대지를 사서 1891년 10월27일 정초(定礎)하고 1892년 9월 준공을 보았다. 설계자는 당시 부주교이던 프랑스신부 코스트(Eupance Jean, George Coste)로서 중국인 기술자들이 시공하였다.

평면은 중앙에 네이브(Nave)를 두고 좌우에 네이브폭의 1/2폭되는 아일(Asile)을 두었고, 중앙으로 남녀 구별지어 앉도록 간막이가 있었는데 1921년 교세의 상승과 더불어 본당신부 우신부가 칸막이를 철거하고 둔중하던 내부의 벽돌기둥을 돌기둥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입면은 정면 중앙에 뾰족아취(Pointed arch)의 현관문을 두고, 이의 좌우에 반원아취의 창문을 두었으며, 중앙에 뾰족한 지붕을 가진 높이 22m의 종탑을 두었다. 이 종탑은 고종9(1905)년에 새로 세운 것으로 종탑의 지붕에는 사면에 루까르네(Lucarne)를 설치하였고, 그 아래 종탑 탑신 즉 종탑의 몸체에는 뾰죽아취의 창을 쌍으로 두었다. 현관 바로 위에는 둥근 원화창이 있다.

천장은 네이브에서는 뾰죽 바렐볼트(Pointed brrel bault)이고, 아일에서는 반원형 바렐볼트로 리블볼트이다.

지붕은 함석으로 마감하였다. 현재 제단부의 스테인드그래스는 1974년 성당복원공사시 이남규씨 작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현재 중림동성당이라 불리고 있는 이 성당 근처의 염초교(焰硝橋, 逢來橋)언저리는 중국에 들어가 최초로 영세를 받은 이승훈(李承薰)의 집이 있었고, 순조원년(1801), 헌종5년(1839), 고종3년(1866)등 이른바 신유(辛酉), 기해(己亥), 병인(丙寅)년의 천주교 수난때 44인의 순교자가 이곳과 가까운 서소문밖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이 터를 구입하여 성당을 세운 것이라 한다. 글출처~문화재청

 

 

 

 

 

 

 

 

 

 

 

 

 

 

 

 

 

 

 

 

 

 

 

 

 

 

 

 

 

약현성당 (藥峴聖堂) 사적  제252호

서울 중구 중림동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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