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당시에는 서울시내 3대 건물의 하나로 꼽혔던 천도교중앙대교당

2012. 2. 15. 16:38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서울 문화재탐방] 천도교중앙대교당 (天道敎中央大敎堂)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6호

 

 

천도교의 중앙교당으로 종교의식과 일반행사를 하는 곳이다. 천도교 3대 교주였던 손병희의 주관으로 1918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921년에 완공되었다. 교인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공사비로 충당하였는데, 공사비에서 남은 돈은 3·1운동 자금으로 사용하였다.

건물의 기초부는 화강석을 사용하고 벽은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쌓았다.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인데, 철근 앵글로 중간에 기둥이 없게 하였다. 또한 앞면에 2층 사무실을 탑 모양의 바로크풍으로 하여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에는 서울시내 3대 건물의 하나로 꼽혔으며, 교회당의 구조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을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선생의 주관으로 1918년에 시공하여 1921년에 완공한 천도교의 교당이다. 당시에는 서울시내 3대 건물의 하나로 꼽혔다. 건물의 기초부는 화강석을 사용하고 벽체는 붉은 벽돌로 쌓았으며 지붕은 맞배로 되어 있다. 탑의 지붕은 바로크풍으로 이루어 특이하다. 건축양식상 독특한 점이 많고 또 교회당 구조를 닮았으면서도 이와는 전혀 다른 맛을 지니고 있다. 글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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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天道敎)

천도교(天道敎)는 조선 말기 1대 교조이자 순교자자인 최제우가 1860년에 서학, 즉 천주교에 반대하여 창시한 민족 종교인 동학을 1905년에 3대 교조 손병희가 개칭한 종교이다.  1860년을 포덕 원년으로 삼는다

1920년 대에는 신도 수가 300만 명에 이르렀으나,  1922년 손병희 교조의 죽음으로 신·구파로 갈리며 교세가 하락하기 시작한다. 1930년에 두 교파는 잠시 결합했다가, 1932년 다시 갈라서고, 1940년에 다시 합쳐진다. 1970년대 초에 천도교는 대통령 박정희의 지원을 받고, 용담정이 복구되고 수운회관도 세워졌으나, 당시 외무장관까지 지냈던 최덕신 교령이 월북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어 1997년에는 오익제 교령까지 월북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현재 신도 수는 10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100여 개의 교구가 있다.

천도교의 최고 지도자는 교령이라 불리고, 대의원 회의에서 선출된다. 교령의 임기는 3년이고, 단임제이다. 현 교령은 2010년 취임한 임운길이다

 

 

 

 

천도교와 삼일운동

손병희를 대표로 하여, 천도교·기독교·불교의 지도적 인사로 구성된 민족대표 33인은 마침 고종황제의 인산 因山(국장)이 3월 3이로 결정되자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모일 것을 예측, 3월 1일 정오를 기해 파고다공원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인쇄물을 뿌리고 시위운동을 펴기로 했다. 또 각 지방에도 미리 조직을 짜고 독립선언서와 함께 운동의 방법·날짜 등을 전달해두었다. 독립선언서와 일본정부에 대한 통고문, 미국대통령·파리 강화회의 대표들에게 보낼 의견서는 최남선이 기초하고, 비용과 인쇄는 천도교측이 맡아, 2월27일 밤 보성인쇄소에서 2만 1천장을 인쇄, 은밀히 전국 주요도시에 배포했다. 손병희 이하 33명의 민족대표는 3월 1일 오후 2시 정각 인사동의 태화관泰和館에 모여 한용운이 독립선언서의 낭독을 끝내자 만세삼창을 부른 후 경찰에 통고하여 자진 체포당했다. 한편, 파고다 공원에는 5천여명의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정재용鄭在鎔이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른 후 시위에 나섰다. 이들의 시위행렬에 수만의 시민들이 가담함으로써 서울시내는 흥분된 군중과 만세소리로 들끓게 되고, 만세운동은 삽시에 전국적으로 번져나가, 오후6시 진남포·선천·안주·의주·원산·함흥·대구등지에서 시위가 벌어졌으며, 다음날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와 시위운동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서울에서는 3일의 국장 당일에만 잠잠했을 뿐 매일 가두시위가 벌어졌으며, 학생은 휴교, 상인은 철시, 노동자는 파업, 관리는 퇴직으로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이에 총독부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 비무장 평화적 시위를 벌이는 군중에 대해 무자비한 공격을 가해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부상·투옥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화수리·정주·맹산·강서·대구·밀양·합천등 많은 곳에서 일제에 의해 잔인한 집단학살이 저질러지고, 유관순의 참살 등이 자행되었으며, 민족대표를 위시한 지도자 47명은 내란죄로 기소되었다.

 

 

 

 

 

천도교중앙대교당 (天道敎中央大敎堂)

서울 종로구  경운동 88

서울특별시 종로구 문화공보과 02-731-1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