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17. 08:59ㆍ전국 절집이야기/사찰(寺刹) 이야기
봄이오는 길목의 수행도량 마곡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이다. “마곡사 사적입안(事蹟立案)”의 기록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자장(慈藏)이 창건하였으며, 고려 명종(明宗) 때 1172년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수하고, 범일(梵日)이 재건하였으며, 다시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수하고, 순각(淳覺)이 보수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려 ‘영산전(靈山殿)’이라고 사액(賜額)을 한 일이 있다.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대사찰이었는데, 현재는 대웅보전(보물 801)·대광보전(大光寶殿:보물 802)·영산전(보물 800)·사천왕문·해탈문(解脫門) 등이 있을 뿐이다. 이 밖에 사보(寺寶)로는 5층 석탑(보물 799)·범종(梵鐘:지방유형문화재 62), 괘불(掛佛) 1폭, 목패(木牌), 세조가 타던 연(輦), 청동 향로(지방유형문화재 20)가 있고, 《감지금니묘볍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제6권(보물 270) 및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 269)이 있다.
마곡사해탈문 (麻谷寺解脫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
해탈문은 마곡사의 정문으로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불교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중앙 통로 양쪽 편에 금강역사상과 문수동자상 등을 모시고 있다.
마곡사의 정문으로서 이 문을 지나면 속세(俗世)를 벗어나 불교세계[법계]에 들어가게 되며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하여 해탈문(解脫門)이라 한다.
중앙 통로 양편에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과 보현(普賢) 문수 동자상(文殊 童子像)을 모시고 있다.
마곡사해탈문 (麻谷寺解脫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
마곡사천왕문 (麻谷寺天王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2호
천왕문은 조선 후기에 세웠으며, 건물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보아 1910년에 고쳐 지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서 두번째 있는 문인 천왕문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천장은 지붕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으로 꾸몄고, 안쪽에는 동서남북 4지역을 지키는 사천왕상과 그림이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후기에 세워진 사천왕문(四天王門)으로 사찰의 입구에서 해탈문(解脫門)을 거쳐 두 번째로 지나는 대문을 말한다. 사천왕은 천상계(天上界)의 가장 낮은 곳인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4지역을 관할하는 신적 존재이다. 이들은 부처님이 계신다는 수미산(須彌山)의 중턱 사방을 지키면서 인간들이 불도를 따라 사는지 살피어 그들을 올바로 인도하는 천왕들이다. 천왕문에는 사천왕 그림이나 조각상〔四天王像〕이 있다.
마곡사명부전 (麻谷寺冥府殿)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4호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모시고 있어 지장전·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은 모든 인간을 교화시키는 역할을 맡았으며, 시왕은 염라대왕을 비롯한 10명의 지옥 심판관이다.
명부전(冥府殿)은 지장보살(地藏菩薩)과 염라대왕(閻羅大王)을 비롯한 시왕을 모신곳으로 시왕전(十王殿)·지장전(地藏殿)·명왕전(冥王殿)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은 불교에서 구원의 이상을 상징하는 자비로운 보살로 모든 인간을 교화시켜 성불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은 보살이다. 시왕은 인간이 죽은 후에 지옥에서 죄가 많고 적음을 가리는 10명의 왕으로 염라대왕은 그 중의 다섯 번째 왕이다.
주존(主尊)인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시왕상(冥府十王像)을 모시고 있다.
마곡사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마곡사 대광보전 이전에 건물이 있었던 것은 명확하나 이전 건물의 명칭이 대광보전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조선 후기에 현재의 건물을 다시 건립하면서 대광보전이 되었다. 마곡사 대광보전 이전에 있었던 건물의 건립 연대는 정확하게 전해오지 않지만 소실된 후 1813년(순조 13)에 중건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어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이 밝혀졌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지붕가구는 무고주 칠량집이다. 내부의 주불은 비로자나불을 독신불로 봉안하고 있다. 불상은 정면에 두지 않고, 서쪽 면에 안치해 두었다. 자연석 허튼층쌓기로 기단을 만든 위에 덤벙주초로 초석을 삼았다. 기둥은 서로 굵기가 다른 민흘림 원주를 사용하고 있는데, 하단부를 비교해 볼 때 굵은 것은 직경이 1m에 가까운 것도 있고, 가는 경우 0.42m인 것도 있다.
공포는 다포계이며, 외 3출목 5포작, 내 4출목 7포작이다. 정면 외부로 뻗은 제공은 쇠서 위에 연화를 새기고 내부는 운공으로 조각하였다. 내부의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창은 우물반자이며, 주불단 위쪽에는 다포계 공포로 짜 만든 화려한 닷집이 있다. 정면 창호는 삼분합 들여 열개인데 꽃살 문양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각이 매우 견실하고 기법이 우수하다.
마곡사 대광보전의 특징은 불상 배치와 목구조의 구성 기법이다. 일반적으로 불전에서 불상은 건물 안쪽 후불벽을 배경으로 안치하는 데 비해 마곡사 대광보전의 경우 건물 안 서쪽 벽 쪽에 후불벽을 만들었다. 목구조의 경우 자연목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기둥에 사용하였고, 화려한 조각 장식이 곳곳에 다양하게 설치된 조선 후기의 건축 구성 기법을 보인다.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公州 麻谷寺 五層石塔)보물 제799호
마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구한말에는 독립운동가 김구와도 인연이 깊었던 사찰이다.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일본인 장교를 죽인 후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로 지냈는데, 지금도 대광보전 앞쪽에는 김구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절마당에 우뚝 서 있는 이 탑은 탑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에는 부처, 보살 등을 조각해 놓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현재는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중국 원나라의 라마탑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
길쭉한 감이 있어 안정감은 적으나 당당한 풍채로 버티고 서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머리장식의 독특한 모습으로 보아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후기 즈음으로 여겨진다. 즉 고려 후기 당시 원나라와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라마교 계통의 문화도 고려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탑은 그 문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탑 안의 보물들을 거의 도난당하였으나, 1972년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마곡사응진전 (麻谷寺應眞殿)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5호
마곡사는 백제 무왕 41년(640)에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절 경내에는 응진전을 비롯하여 대웅전, 영산전, 대광보전, 홍성루 등 많은 건물이 남아 있다.
응진전은 철종 3년(1852)에 새로 보수한 것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짜올렸다.
안쪽에는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公州 麻谷寺 大雄寶殿)보물 제801호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던 절로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었다. 훗날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대웅전·영산전·대적광전 등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이 법당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불·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킬 때(1651) 고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규모는 1층이 앞면 5칸·옆면 4칸, 2층이 앞면 3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 위에 연꽃을 조각해 놓아 조선 중기 이후의 장식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건물 2층에 걸려 있는 현판은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라고 한다. 건물 안쪽은 우물 정(井)자 형태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천장을 2층 대들보와 연결하여 만들었고 마루도 널찍해 공간구성이 시원해 보인다.
조선 중기 2층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마곡사심검당및고방 (麻谷寺尋劍堂및庫房)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마곡사 심검당은 대광보전 5층 석탑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채이며, 고방은 창고건물이다.
심검당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조 21년(1797)년에 보수공사가 이루어진 기록과 편액에 적힌 글에 의하면 철종 7년(1856)년에 고치고 1909년에 기와를 다시 올렸다고 한다. ㄷ자 평면에 자연석을 쌓아 1층의 기단을 형성하고 주춧돌을 놓은 위에 둥글고 네모난 기둥을 혼합하여 세웠다. 고방은 앞면 4칸·옆면 1칸 규모의 남향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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