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여행]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2012. 6. 19. 16:00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내 박물관

 

 

 

 

 

[공주여행]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충남 공주시 중동에 있는 역사 박물관은 조선시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충청남도 관련 유물을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매년 자료집 및 각종 도록을 발간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체험 학습을 실시하여 충청남도 도민에게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충청남도에서 출연한 재단법인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에 속한 박물관이다.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고 바로 세워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충청남도 도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할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2004년 4월 1일 개원한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의 소속 부서로서 전시유물부가 설치되어 박물관 설립 준비에 들어갔다. 2005년 5월 30일 충청남도 도정사료실의 자료 4,460점을 이관 받는 등 개관 전까지 55명으로부터 총 34,561점을 기증·기탁받았다.

2년여의 기간 동안 박물관 개관 준비 작업을 마친 후 2006년 9월 28일 조선시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을 옛 국립공주박물관 건물에서 개관하였다. 2007년 7월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박물관운영팀으로 박물관 담당 부서의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8년 2월에는 540㎡ 규모의 수장고가 신축되어 임시 수장고에 보관되어 오던 소장 유물을 이전하였다. 2008년 4월에는 기획전시실과 체험학습실, 교육실습실, 정보자료실을 확보하여 박물관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고 있다.

2007년 4월에는 벚꽃문화축전을 개최하여 2006년 12월 보물로 지정된 명재 윤증 초상과 조선시대 마지막 통신사였던 죽리 김이교의 유물을 특별 공개하였고, 시화전 및 공연·체험 행사를 열었다. 9월에는 ‘난중에 난을 만나다-임진왜란기 내란을 평정한 청난공신’이라는 주제로 기획전을 개최하고, 박물관 음악회를 열었다.

동년 10월에는 ‘사진으로 만나는 기지시줄다리기’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연중 총 9차례 ‘찾아가는 박물관’을 실시하였다. 2008년 4월에는 제2회 벚꽃문화축전을 개최하여 사진전 및 전통 민속 놀이와 다양한 문화 체험 행사를 열었다.

출판 사항으로 『충남역사박물관 개관도록』, 『성선생댁상가 노성무안박씨』, 『난중에 난을 만나다』(기획전 도록), 『안동김씨 문정공파 유물과 서화·전적』(춘강 김영한 소장품 도록) 등의 도록을 발간하였고, 「담헌 홍대용 유적 복원을 위한 기초연구」, 「장항선 노반개량공사구간 내 문화유적 민속조사」 등의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번역서로 『북접일기』를, 자료집으로는 『세월속의 유정』 등을 발간하였다.

 


 

 

 

 

 

규모는 부지 13,645㎡에 본관 1동과 별관 2동 그리고 수장고로 구성되어 있다. 본관은 상설전시실 864.92㎡, 기획전시실 147㎡, 체험학습실 69.58㎡, 연구실 133.23㎡로 구성되어 있다. 별관은 교육실습실 145㎡, 정보자료실 77.14㎡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장고는 540㎡이다.

조직은 관장 아래 박물관운영팀이 있다. 팀원은 팀장 1명, 연구직 3명, 사무직 1명, 기능직 1명이 근무하고 있다. 상설전시실은 ① 백성, 수령 그리고 관찰사 ② 충절과 예학의 고장, 충청도 ③ 근·현대의 충남충남 사람들의 삶과 문화 ⑤ 옛 사진과 함께하는 추억 여행 등 5개 부분으로 나뉘어 고문서 및 고전적, 근현대 자료 등 총 597점이 전시되어 있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목판 인쇄 체험, 충청도 관찰사 교지 만들기, 호구단자 만들어 보기와 승경도 놀이, 쌍륙, 시패 놀이, 저포 놀이, 투호 놀이 등의 전통 놀이와 함께 야외에서 제기차기, 굴렁쇠, 딱지치기, 줄넘기 등 다양한 민속 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체험 프로그램은 연중 수시로 실시하고 있는 ‘찾아가는 박물관’을 통해 박물관을 직접 찾아오지 않더라도 체험할 수 있다.

교육실습실은 지역 주민 및 문화 예술 단체에게 무료로 대관을 해주고 있다. 정보자료실에는 2만여 권의 기증 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이 자료들은 대부분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자료로 누구든지 와서 열람할 수 있으며, 복제 및 대여가 가능하다.

2011년 11월 현재 소장 유물은 고서 3,626책, 고문서 20, 726점, 민속 유물 2,918점, 충남도정자료 7, 866점, 기증 도서 7, 853책, 기타 5,302점 모판 1, 041점 을 포함하여 총 49,332점이다.

 

 



 

 

충청남도에는 2개의 국립 박물관이 있어 충청남도의 고대 역사에 대해서 잘 살펴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으나, 조선시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기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은 바로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고고 발굴 유물 중심의 전시가 아닌 상대적으로 현재에 가까운 조선시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하고 있다.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충청남도에 도립 역사 박물관이 없는 상황에서 충청남도 도민의 역사적 자부심과 문화 향유를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기관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박물관 시설을 무료로 대관하여 지역 문화 단체나 주민에게 문화 생활의 기회와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찾아가는 박물관 등의 활동을 통해 언제나 열린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명재 윤증, 백의로 조선을 경영하다

 

명재 윤증가에서 기탁한 1만 2천여 점의

유물을 선별하여 윤증선생의 일생을 조명하고 있다

 

 

 

 

 

 

 

 

 

계본초
1683년 2월 윤증이 임금의 명에 의해 응할 만한 재주와 학식이 없고,
 병 또한 더욱 깊어져 조정에 나아갈 수 없다고 숙종에게 올린 문서의 초본이다.
윤증은 이해 5월 거듭된 국왕의 부름으로 과천까지 나아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명재 윤증의 향촌활동

 

윤증은 1676년(49세)에 처음으로 니산의 유봉에

거처하기 시작하여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 주로 머물러 있으며 문중사업과 강학 활동에 힘을 쏟는다.

 

 

 

 

 

명재의례문답

조선 후기의 문신 ·성리학자 윤증(尹拯)이 제자 및

학자들에게 행한 예(禮)에 대한 문답서(問答書).

 

 

 

 

노강서원학규 魯岡書院學規

조선朝鮮 1675년(숙종 1) 노강서원의 학규學規로 모두 21조목으로 되어 있다.

 원생院生의 자격과 공부하는 순서, 평가 및 등급 산정 방법 등이 기록되어 있다

 

 

 

 

 

 

 

 

논산의 파평윤씨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돈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파평윤씨는 약 1500년경 승지공 윤돈(尹暾)의 장인인 유연(柳淵)이 살고 있던 이산현 득윤면 당후촌으로 이거하면서 노성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통정대부 첨정이었던 유연은 일찍이 이산현 득윤면 당후촌에 터전을 잡고 부유하게 살며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 유서봉(柳瑞鳳)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두 명의 딸만이 남게 되었다. 그중 첫째 딸은 한여헌에게 출가하여 그 후손들이 연산면 백석리 텃골에서 누대를 살게 되고, 둘째 딸은 윤돈에게 출가하여 득윤면 당후촌에 살게 된다.

이후 윤돈의 아들 윤창세에게 외가의 모든 전답이 분재되어, 윤창세가 이관 받은 전답으로 외손봉사를 하게 되었으며, 현재까지 그러한 전통이 남아 있다. 이렇게 이거한 파평윤씨들은 윤창세노성면 병사리 비봉산에 터를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노성면에 세거하게 되었고 윤창세의 아들들이 자라 파평윤씨 노종5방파로 나뉘게 되었다. 이후 파평윤씨들은 노성면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시켜 나갔고 특히 ‘충청5현’으로 대표되는 윤선거를 비롯하여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는 명재 윤증 등 많은 명현을 배출하게 되었다.
1995년 기준 파평윤씨논산읍에 215가구를 비롯하여 연무읍에 145가구, 노성면에 112가구, 광석면에 85가구, 성동면에 77가구 등 논산군에 총 968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논산의 대표 성씨였던 만큼 논산시 일대에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어 그들의 세력을 짐작하게 하는데, 그중 특히 노성면 일대에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노성면 병사리에 남아 있는 병사재실과 파평윤씨 묘역, 파평윤씨 종학당, 파평윤씨 정수루 등이다. 또한 노성면 장구리에는 윤황의 고택과 그의 묘소, 광석면 오강리에는 노강서원, 노성면 교촌리 마을 입구에는 윤선거 처 공주이씨 정려 등이 있고, 소론의 영수 윤증의 고택과 유품들이 남아 있다.


 

 

 

 

 

 

 

 

충청도 관찰사가 도내 제반 현황을 파악하여 기록한 금영총록

 

 

호패

 

진주성도

 

 

 

 

 

동춘당 송준길 연시연 상차림

 

송준길은 조선 17세기의 정치가이자,

 예학(禮學)에 밝았던 성리학자였으며,

 또한 당대의 명필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송준길의 글씨는 ′엄정함′과 ′부러질 듯한 강건함′을 지닌 필치가 특징이다.

 

 

 

 

 

 

충현서원의 주자초상(충남 유형문화재 제218호)

 

 

 

 

 

 

 

 

 

아메미야 히로스케

 

일제 강점기 공주에서 태어나 소학교를 거쳐 중학교까지 다닌

아메미야 히로스케(雨宮宏輔·)씨가 일본으로 반출된 유물 68종 328점을 기증했다.
아메미야씨가 기증한 유물은 청동기시대 마제석검과 청동거울, 청자, 백자 등

고대 유물에서부터 일제 강점기 기념엽서 등 근대 유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특히 비색의 청자 대접과 점열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진 분청사기는

 문화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10년대 금강에 가설된 ‘공주 섭다리’ 모습과

 구한말·일제 강점기 각종 풍경과 인물이 수록된 엽서 등도 근대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기대되고 있다.

 

 

 

 

 

 

 

 

 

 

 

 

 

공주중동성당 (公州中洞聖堂) 충청남도 기념물 제142호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맞은편 언덕 위에 자리한 천주교 성당으로, 서양 중세 때 유행하던 고딕건축 양식 건물이다.

평면이 약간 변형된 라틴식 십자가형으로, 외관이 붉은 벽돌로 되어있다. 중앙 현관의 꼭대기에는 높은 종탑이 있고, 현관 출입구와 창의 윗부분은 끝이 뾰쪽한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내부는 중앙에 여러사람이 앉을 수 있는 긴 의자를 놓고 그 양쪽에 복도를 둔 형식이다. 중앙의 넓은 공간과 복도 사이에는 6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단면이 6각형을 이루고 있다.

1934년에 착공하여 1936년에 완공한 것으로, 전통적인 목조건물에서 현대 건축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서양 중세기에 유행하던 고딕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평면은 약간 변형된 라틴식 십자가형이고 내부는 중앙에 넓은 회중석(會衆席)을 두고 그 양쪽에 복도를 둔 3랑식(廊式)이다. 회중석과 복도 사이에는 6개의 돌기둥이 서 있는데 단면이 6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에는 목조건축에서 볼 수 있는 굽받침이 있는 주두(柱頭)가 있고 이것이 아-치와 리브를 받고 있다. 외관은 붉은 벽돌로 덮고 현과 출입구와 창에는 끝이 뾰족한 아치가 장식되어 있어 수직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있으며 중앙 현관의 상부에는 높은 종탑이 서 있다.

가파른 언덕 위에 높은 종탑을 세워 종교건물의 위엄을 표현하였다. 전통적인 목조건물에서 현대건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모습을 건축 세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