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21. 05:57ㆍ우리 문화예술 공연전시 /문학관,미술관,기념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청마기념관과 생가 [경남/거제도]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17세에 결혼한 청마 유치환이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인 21살에 남편과 사별한 이영도 시인에게 5,000여통의 편지를 보냈다던 중앙우체국의 빨간우체통 있던 길건너 맞은편 2층이 이영도 시인의 집이였는데도 청마 유치환은 편지를 썻다. 시 행복도 이때에 쓰여진다. 청마 유치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자 이영도 시인은 연서들을 책으로 출간한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청마 시의 한구절 따서 표제를 달은 이책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25,000부가 팔려 나갔다. 수익금은 현대시학사에 정운 문학상 기금으로 적립 되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에 위치한 청마기념관은 2층 건물로
청마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놓았고 기념관 옆에 생가도 복원해 놓았다
1908년 음력 7월 14일 아버지 유준수와 어머니 박우수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가운이 기울어져 귀국, 1926년 동래중학교 5년 편입 후 1927년 연희전문학교를 수료하였다. 시단을 풍미했던 정지용의 시에 감동, 형 유치진과 함께 동인지 ‘생리(生理)’를 발간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고,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 발간과 더불어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쳐 온 결과,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경상북도 문화상 및 예술원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1967년 부산남여상 교장 재임시 부산 좌천동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한국문단의 거목이다. 뉘우침, 외로움, 두려움, 번민 등의 일체로부터 벗어난 어떤 절대적인 경지를 갈구했으며 그 해결의 길을 일체의 생명적인 것에 대한 허무주의적 자각에서 찾고자 했다. 13권의 시집과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깃발’을 비롯한 작품의 소재를 청정해역과 천년의 절경을 간직한 거제의 모습을 담았고, ‘거제도둔덕골’은 8대로 살아온 고향임을, 청마가 잠들어 있는 인근 선영 지당골의 모친 묘비에 있는 ‘사모곡’의 내용에는 “멀지 않아 제 또한 당신 곁에 당신 모셔 이 하늘 우러르고 묻힐 날을 기약 하오매”라는 간절한 염원이 깃들어 있다. 태어났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등 출생지인 이곳 거제도 둔덕골에 대한 애틋한 향수가 청마의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다.
청마선생은 11세까지 한학을 배웠으며, 일본 토쿄 토요야마 중학에 입학하였으나
해설을 해주시는 청마기념관 관장님
청마기념관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5
055-639-8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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