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5. 05:57ㆍ우리 문화예술 공연전시 /문학관,미술관,기념관
자랑스런 대한국인! 독립운동가 안중근의사를 기리는 곳
안중근의사기념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독립운동가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를 기리는 기념관이다.
1970년에 세워져 사단법인 안중근 의사 숭모회에서 운영하던
舊 기념관은 철거 되고, 2010. 10. 26일 새 기념관이 개관 되었다.
기념관은 실내 전시실과 안의사 광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내전시실은 안의사 일대기, 하얼빈 의거, 재판과정 등을
다룬 영상물과 옥중생활 모험, 활약상을 다룬 슈퍼그래픽,
유물 등을 통하여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위업을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안의사 광장에는 안의사의 인품,
기개,사상을 느낄 수 있는 동상과 어록비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밖에 안의사가 남긴 붓글씨, 관련 사진, 건국공로 훈장과 서한,
공판 당시 신문 보도 내용, 유명 인사 휘호 등이 전시되어 있다.
행복지수 올려주실 거지요
기념관 내부에는 사단법인 안중근 의사 숭모회 사무실이 있어
안중근 의사에 대한 각종 유물과 자료를 발굴 수집하고
매년 기념식과 학술 심포지엄,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서예 백일장 등의 행사를 개최한다. 무료입장이며
개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겨울철에는 5시)까지이며,
입장은 종료 1시간 전까지 가능하다. 주변에는 남산도서관과,
서울시 교육연구정보원, 백범광장이 인접해 있고,
5분거리에 남산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다.
매주 월요일과 설. 추석 연휴는 휴관합니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
안중근의사는 구한말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가 참담한 종말을 맞고 있을때
침략의 원흉인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여
우리 민족의 혼과 기개가 살아있음을
세계 만방에 알린 민족의 영웅입니다.
안중근의사의 대형 좌상이 있어 입장시 참배하는 곳이며,
각종 기념식, 세미나 등을 할 수 있는 종합 공간입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에서 1905년 을사늑약까지 30년간 조선은 국난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임오군변(1882), 을미사변(1895), 러일전쟁(1904) 등의 격변을 거치면서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해 갔습니다. 구국을 위한 계몽운동과 의병투쟁에도 불구하고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되면서 한국은 사실상 식민지 상태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안중근의사는 이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와중인 1879년 9월 2일 태어났습니다
안중근의사는 1897년 천주교에 입교한 이후 수년간 천주교를
전파하는 한편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계몽운동을 펼칩니다.
안의사는 항일운동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중국의 산둥.상하이 등지를 시찰합니다.
교육.민족운동가
안중근의사는 의병활동에 투신하기 전 진남포에서 사재(私財)로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운영하여 후세교육에 모든 힘을 쏟습니다.
그리고 국채보상운동 서북지역 책임자를 맡아 온 가족이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등 민족 계몽운동을 펼칩니다.
안중근의사는 위대한 독립투사였을 뿐 아니라 탁월한 정치사상가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옥중에서 구상한 동양평화론의 내용은 100년이 지난 지금의 유럽공동체(EU), 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의 기능과 거의 일치하는 매우 놀랄만한 것입니다. 탁월한 정치사상가
1909년 10월 안중근의사는 이토의 하얼빈 방문 소식에
우덕순,조도선,유동하의 의거를 계획하고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합니다.
하얼빈 의거의 이유
나의 목적은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의 유지에 있었고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하기에 이른것도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동양의 평화를 위한것으로 아직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이토를 죽여도 자살할 생각따위는 없었다.(대한국인 안중근)
안중근의사는 하얼빈의거가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거행된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나 일본 법정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언도합니다.
안중근의사 평화정신
안중근의사는 재판에서 하얼빈의거가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거행한 것임을 밝힙니다.
또한 1908년 의병투쟁 당시 생포한 일본군 포로를 놓아주었으며,
여순감옥에서도 간수 등 주변의 일본인들에게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등 진정한 평화정신의 소유자였습니다
5개월 동안 뤼순감옥에서 자서전「안응칠 역사」와
한국 독립을 위해 나아갈 길을 제시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셨습니다.
1910년 3월 26일 순국한 안중근의사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
자신의 몸과 집안을 돌볼 겨를 없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 이는 한국 독립운동의 방향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순국 102주년
안중근의사는 순국 전에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옆에 묻어 두었다가
나라를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것이다.” 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순국 102년이 지나도록 안중근의사의 유해를
의사께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조국에 모셔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1910년 2월과 3월 뤼순감옥 내에서 쓴 옥중유필은 약 200여 점에 달하며,
한국과 중국, 일본 등에 산재해 있습니다. 안중근의사의 것으로
밝혀진 것은 57점이며, 이 중 26점이 국가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471-2번지 소월로91
02-378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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