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가도 왕십리(기획전시)를 하고있는 청계천문화관

2012. 12. 22. 05:57우리 문화예술 공연전시 /문학관,미술관,기념관

 

 

 

 

 

가도가도 왕십리(기획전시)를 하고있는 청계천문화관

 

 

 청계천문화관은 2005년 개관하였다.

건물총면적 5,712.40m²의 지하 2층·지상 4층 규모이며,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장동 청계천변에 자리한다.

건물 정면의 외관은 긴 유리 튜브가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청계천의 물길을 상징하는 것이며, 내부는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실·교육실·소강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기획전시는

가도가도 왕십리를 2012.11.23 ~2013.02.24일까지 하고있다


 

 

 

조선시대 영조대의 준천모습

 

 

 

상설전시장은 ‘청계천이 복개되기까지’, ‘청계천복원공사’, ‘근대화 속의 청계천’,

 ‘인공위성사진으로 보는 청계천’, ‘조선시대의 청계천’ 등 8개의 주제로 나누어

 청계천의 역사에 대해 전시하는 공간이다. 조선시대 영조대의 준천모습과

 광통교·장통교·수표교·오간수교·살곶이다리 등 청계천의 옛 다리,

청계천을 복개하기 전 청계천변 주민들의 생활모습, 청계천 복

원공사 과정 등을 모형으로 연출하고, 조선시대 이래 청계천

주변의 모습과 복개공사 현장에 대한 영상물을 상영한다.

 

 


 

 

 

 

 

청계천 관련 각종 지도와 서적·공사도면을 비롯한 다양한 사진 자료도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 바닥에 강화유리를 깔고 유리 아래에 청계천일대의 대형 항공사진을 매입해

관람객들이 그 위로 걸어 다니며 청계천의 곳곳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모니터를 통해 청계천의 현재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코너도 있다.

 기획전시실은 청계천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전시를 여는 공간이다.

평일은 오전 9시∼오후 8시,토·일요일과 공휴일은 오전 10시∼오후 6시에

 개관하며 월요일과 1월 1일에는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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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 있던 수표교

지금은 장충단공원내에 옮겨 놓았다

 

 

 

 

 

 

 

 

 

 

 

한국전쟁후 청계천변의 생활모습

 

 

 

 

 

 

한국전쟁 이후에 청계천에 생겨난 염색공장은

주로 군복들을 검정색으로 염색해서 팔곤하였다

 

 

 

 

 

 

 

 

 

 

 

청계천의 복개공사

한국전쟁 후 청계천은 판자촌이 즐비하고, 오수와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당시의 열악한 경제상황에서 청계천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방법은 '복개' 였다.

 1958년부터 1961년에는 광교에서 청계6가 오간수교까지, 1965년부터 1967년에는

오간수교에서 신설동까지, 1970년부터 1977년에는 신설동에서 신답철교까지

 약 20년에 걸쳐 청계천은 완전히 복개 되었으며,

그 위로는 길이 5.8km, 폭 12m의 육중한 고가도로가 건설되었다.

 

 

 

 

 

 

 

 

 

 

 

세운상가의 건립

세운상가가 들어선 자리는 일제강점기 '소개공지대'라고 하여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항공기가 공습으로 화재가 났을 때 불이 옆으로 옮겨 붙지 못하도록 만든 빈터였으나

해방과 한국전쟁후 이재민과 피난민들이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 판자촌으로 바뀌었다.

 1960년대 이후 도심재개발 과정에서 무허가 판자촌이 철거되었고, 1967년 '주상복합' 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세운상가가 들어섰다. 세운상가는 한때 청계고가도로와 함께 서울의 발전을

 대변하는 상징물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발전을 가로 막는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이 되었다. 청계천이 복원 되면서 새로운 재개발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복개된 청계천의 지하모습

 

 

 

 

청계천 고가와 복공판 철거작업

 

 

 

 

 

 

 

 

 

지하수와 수도물을 수원으로하는 청계천 인공수로 작업

 

 

 

 

 

 

 

가도가도 왕십리

2012.11.23 ~2013.02.24일

 

 

왕십리 배추장수는 뒷덜미가 까맣고 마포 새우젖 장수는 이마와 콧등이 까맣다....

 

 

 

 

 

 

 

임진왜란 이전, 뚝섬과 마장동,면목동,자양동,장안평,

왕십리의 살곶이 일대에 넓은 말목장이 있었다.

 규모는 동서 7리 남북 15리로 군마 관마 사육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였고,

중국에 진헌마도 공급하였다. 현재의 한양대학교 자리에는

말의 무병번식을 기원하는 마조 선목 마보 마사단의

제단이 설치되어 194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

 

 

 

 

 

 

마장동 도살장은 공식적인 허가받은 도살장이고

거기 이상으로 왕십리에서 소를 잡았다고

 집집마다 내가 어느집 어느집 그간 소잡았던 집은 안대니까
소를 그냥 들어가면 15분이야
대문에 넣어버리면 15분이면 고기로 나와
이 왕십리 일대가 그래 황학동,

특히 황학동 거기가 소 수천마리가 죽어갔지 거기.

 

 

 

 

 

 

 

 

 

 

왕십리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왕십리 똥파리이다
청계천 윗동네 용두동에는 1960년대까지 검정다리 바로 옆에

서울시 분뇨를 수거해 모아두던 인분저장소가 있었다.

인분저장소의 분뇨는 기동차를 이용해 뚝섬 채소재배질 옮겨지는데

이때 기동차에 새까맣게 꼬인 똥파리가 왕십리를 거쳐

 지나가는 것을 보며 왕십리 똥파리 란 별명이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왕십리 토박이들은 억울하다 용두동똥파리가

왜 왕십리똥파리가 되었는지 그 오명에서 벗어나고파 한다.

 

 

 

 

 

 

 

 

 

 

 

 

일상속 탈출구, 광무극장


1930년 건립된 광무 극장은 상왕십리 도로교통공단과 광무길 사이에 위치했다.

 2층의 450평 남짓한 공간에 좌석 439석 입석 33석의 총 472석으로 허가받았으나,

 영화가 시작되면 관람객이 밀려와 한번에 800명까지 입장하였다.

공연물 형태는 연극 영화로 연극은 가극 코미디쇼를 공연하고 영화는

 시내에서 상영한 인기물을 두세편씩 저렴한 가격에 동시 상영하였다.

 건물이 낡고 오래되어 안전진단과 위생검사에서 몇차례 부적정 판정을

 받기도 했지만 서울 사람들에게 광무극장은 왕십리의 빼놓을수 없는 명소 였다.

 

 

 

 

 

 

 

 

요 앞에가 구루마에 와서 지하수를 퍼 올리면

얼른 배추를 갖다가 뿌리채 다 닦어

그러면 배추 이런거 우거지 나온걸로 해장을 끓여서 그 양반들 요가가 돼서

아버지때부터 이렇게 있는거지

없는 사람들 그당시에는 저 뚝배기가 저거 두배만 했어

 

 

 

 

 

 

 

 

 

 

 

 

문학 예술 작품 속 왕십리

 

서울사람이 아니어도 우리나라 사람이면 낯설지 않은 곳이 왕십리이다.

 이는 유행가아 영화 시 소설 수필에 끊임없이 왕십리가 회자되기 때문이다.
민족대표시인 김소월은 가도가도 왕십리 에서 왕십리를 관념적인 공간으로

 순수시를 남긴 박목월은 왕십리를 지각의 공간으로 그렸으며, 현재시조시인 백이운은

 시집 왕십리를 통해 유년의 추억을 회상하였다. 소설가 조해일은 1960~70년대 왕십리의

 궁색한 하층민들의 삶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소설 왕십리를 집필했고 이 소설은

 임권택이 연출한 영화 왕십리로 제작되었다. 수필가 이병주는 가도가도 왕십리 에서

경성을 향해 나가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내었다. 도한 가수 김흥국은 59년 왕십리 를 불러

 산업화의 흐름을 타기시작한 변두리 왕십리의 황폐한 모습을 담은 유행가를 남겼다.

 

 

 

 

 

 

 

 

 

 

 

 

청계천문화관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장동 527-4

02-2286-3410

www.cgc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