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임금인 세종대왕기념관 [서울 가볼만한 곳]

2013. 1. 12. 05:52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내 박물관

 

 

 

 

 

우리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임금인 세종대왕기념관 [서울 가볼만한 곳]

 

 

 

대지 13,200㎡, 연건축면적 2,475㎡에 소장 유물은 627점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성덕과 위업을 추모하고 이를 길이 보존하기 위해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1970년 11월 준공하고 1973년 10월 개관하였다.

유물이 진열되어 있는 세종문화진열실은 총면적 716㎡으로 세종대왕 일대기실,

 한글실, 과학실, 국악실 등 4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세종대왕 일대기실에는

 화가 김학수가 재위 32년간의 업적을 담아 그린 14폭의 그림이 있고, 한글실에는

세종 당시와 이후의 보물급 한글 관계 문헌 100여 종을 비롯하여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참고문헌과 외국문자의 탁본, 한글기계화 관련자료가 진열되어 있다.

 

 

행복지수 올려주실 거지요

 

 

 

 

 

 

 

 

과학실에는 세종 때의 조판·인쇄 과정을 재현한 활자 유물을 비롯하여,

보물급의 천문·기상 기구와 도량형·지도·약재 등이 진열되어 있다.

또 국악실에는 세종 때 정비된 각종 국악기 70여 점과 악보·악서, 악사 복식,

 무용 복식 등이 진열되어 있어 당시의 국악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기념관 밖에 보물 제838호인 수표(水標)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호

 세종대왕 신도비(神道碑), 구(舊)영릉 석물 37점이 있다. 주요 사업으로

세종학 연구학술지와 세종문화문고, 세종대왕 관계문헌 등을 펴내고

한글날과 세종의 날 기념행사 및 글짓기대회를 열고 있다.

주변에 홍릉수목원과 사적 제361호인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이 있다 

 

 

 

 

세종성왕기념탑

 

 

 

 

일대기실

 

세종대왕의 어진, 왕자시절의 독서도,

즉위도, 대마도 정벌도, 주자소도, 집현전 학사도,

 지음도, 서운관도, 육진개척도, 이만주 정벌도, 측우기도, 훈민정음 반포도,

 전제상정도, 내불당도, 강무도 등 15폭의 그림 진열

 

 

 

 

 

화가 김학수가 재위 32년간의 업적을 담아 그린 14폭의 그림

 

 

 

 

 

 

 

 

 

 

 

 

 

 

 

 

 

 

한글실에는 세종 당시와 이후의

보물급 한글 관계 문헌 100여 종을 비롯하여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참고문헌과 외국문자의 탁본, 한글기계화 관련자료가 진열되어 있다

세종대왕 때 지은 《훈민정음》을 비롯한 《용비어천가》, 《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

《동국정운》, 《홍무정운역훈》등의 간행도서, 세종 이후의 간행 도서,

 옛활자 관계도서, 한글기계화 자료(타자기), 한글 글씨 병풍 등 진열

 

 

 

 

 

 

 

 

 

 

 

 

 

 

 

 

 

 

과학실

과학실에는 세종 때의 조판·인쇄 과정을 재현한 활자 유물을 비롯하여,

보물급의 천문·기상 기구와 도량형·지도·약재 등이 진열되어 있다.

 세종시대의 활자조판 인쇄과정을 재현한 것을 비롯하여 측우기, 아부일구(해시께),

일성정시의, 천체관측기 등의 발명품과 별자리 그림인 천상열차분야지도(석각),

도량형, 12율관, 동국지도, 총포, 돈, 한의학기구 등 진열

 

 

 

 

 

 

 

 

 

 

 

 

 

 

 

 

 

 

 

 

 

 

 

 

 

 

 

 

 

 

 

 

 

 

 

 

 

 

 

 

 

 

 

 

 

보물 제838호인 수표(水標)

 

수표는 청계천(淸溪川)의 물높이를 재기 위해서 수표교 아래 서쪽 물속에 세웠던 수위측정기(水位測定器)이다.

돌기둥에 눈금을 새긴 이 수표는 홍수 때 서울의 수해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 세웠다. 세종 23년(1441)에

세종은 청계천과 한강에 물높이를 잴 수 있도록 수표를 세우고, 청계천 물이 불어나면 물높이를 수시로

보고하게 하였다. 현재 이곳의 수표는 18세기 영조 25년(1749)에 제작된 돌기둥인데 그 원형은 성종 때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1960년에 청계천 복개공사 때 수표교가 장충단 공원으로 옮겼다가

1973년 10월에 현 위치에 옮겨 보존되고 있다. 이 수표의 눈금은 조선 시대의 길이를 재는 단위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눈금은 주척(周尺) 1자로 그 길이는 평균 21.5㎝ 간격이며, 1척에서부터 10척까지 표시되어 있다.

 원래 서울시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던 것을 1985년에 국가 지정인 보물로 변경하였다. 이 수표는

세종 때 발명된 수위측정기 전통을 이은 유일하고도 귀중한 과학 문화재이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호

 세종대왕 신도비(神道碑)

 

세종대왕 신도비는 문종 2년(1452)에 현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산 13번지, 영릉(英陵)에 세워졌던 것을

 1974년 5월에 이전해 온 것이다. 영릉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능으로 예종 원년(1469) 3월에

현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으로 옮기면서 신도비와 영릉 주변의 석물(石物)을 그대로 두었다.

신도비는 조선 시대에 국왕이나 종2품 이상의 고위관리만 무덤 앞에 세울 수 있었다.

이 신도비는 옛 영릉 터에서 약 1km 떨어진 순조의 인릉(仁陵)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신도비의 머리부분인 이수(螭首)는 두 마리의 용이 좌우에서 구슬을 물고 있는 모습이며,

조각 솜씨는 매우 정교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작용으로 인하여 손상이 심하다. 

 총 4,886자의 글자가 새겨진 이 비석은 세종대왕의 어진 업적을 찬양하고, 소헌왕후,

후궁 및 그 자녀들에 관한 사항이 기록되어 있는데 글자가 깎여져 나가 읽기가 어렵다. 

이 비석의 앞면은 영의정을 지낸 정인지(鄭麟趾), 뒷면은 김조(金銚)가 글을 짓고, 글씨는 안평대군이 썼다.

신도비의 제작은 정분(鄭笨)과 민신(閔伸)의 지도아래 1백 50여명의 석공이 동원되어 거의 2년 만에 완성하였다.

 

 

 

주시경 스승 묘비

 

 

 

 

 

구(舊)영릉 석물 37점

 

구 영릉 봉분터 주위에서 나온 석물이다. 세종 28년(1446) 소헌 왕후(昭憲王后)가

 승하하여 산릉(山陵)을 만들 때 15,000여 명을 동원하여 석실(石室) 등을 만들고 이를 세운 것이다.

돌은 강화산(江華産)이라 하며, 예종 원년(1469) 경기도 여주(驪州)로 천안할 때

천장 도감(遷葬都監)에서 석물을 옮기기로 하였으나 왕명에 의해 그 자리에 묻었던 것을

 1973년 12월~1974년 3월에 걸쳐 발굴하여 같은 해 5월에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세종대왕기념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산1-157

02-969-8851

입장료 있음  어른 2,000원 어린이1,000원

09:00~18:00 매주 월요일, 명절 당일 휴무

http://www.sejongkorea.org/sub/sub02_08.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