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17. 20:52ㆍ카톨릭 이야기/영성의 샘물
새벽을 열며
죽을병에 걸린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돈만 생각했고 그래서 어려운 사람을 돕기보다는 자신의 돈을 어떻게 하면 더 불릴 수 있을까를 죽는 순간까지 하고 있었지요. 드디어 임종의 순간,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목에 걸고 있는 끈에서 열쇠를 풀어 하녀를 손짓하여 불러서 자기 침대 옆에 있는 금고를 가리킵니다. 그리고는 말해요.
“저기 저 금고에서 큰 돈주머니를 꺼내 나의 관속에 넣어라. 알겠느냐?”
얼마 후 그는 죽었습니다. 그는 천국에서 아주 훌륭한 음식이 차려져 있는 큰 식탁을 보았습니다. 그는 배가 고파서 천사에게 “여보시오. 저기 저 연어는 얼마요?”라고 물었지요. 그러자 천사는 “1원이에요.”라고 말합니다. 그는 다시 “그러면 저 참치는요?”라고 물었습니다. “역시 1원입니다.”라고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부자는 신이 났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이면 여기서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는 “싸군, 모든 것이 굉장히 싸!”라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돈 중에서 2원을 꺼내 천사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돈을 받지 않고 “당신은 인생에서 전혀 베푼 것이 없군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 부자는 “무엇을 베풀어야 하는데요? 그런데 그것이 내 돈과 무슨 상관이 있소? 정 그렇다면 내가 10배의 가격을 내리다.”라면서 천사에게 20원을 내밀었습니다. 이에 천사는 이렇게 말했어요.
“여기 천국에서는 누군가에게 선사했던 돈만 받습니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선사했던 돈이 없으니, 이 천국에서는 아무것도 드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옥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천국에 아직 가보지 않아서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들어 하는 사람, 소외받는 사람과 함께 했던 예수님의 삶을 떠올려볼 때, 천국은 바로 이렇게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네요.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은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사실 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서 산 사람들과 계속 연결되고 있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의 모습으로, 또 어떤 사람은 나쁜 사람의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모습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요?
오늘 복음에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족보를 보게 됩니다. 내 족보도 아닌, 남의 족보 관심없다고 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족보 안을 잘 보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선조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지요. 누구는 올바른 모습으로, 누구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살았다는 것을 족보를 통해서 우리들은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족보의 절정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예수님과 같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것을 족보는 말합니다.
주님의 충실한 제자로서 이름을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을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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