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30. 10:58ㆍ카톨릭 이야기/영성의 샘물
가정이 무너지면 행복도 사라진다.
-유영봉 몬시뇰 -
[묵상길잡이] : 사회의 급격한 변화, 이혼의 급증, 가정와해로 인한 청소년문제 노인문제 등이 심각한 현실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정 사목을 위한 교회의 관심과 대책이 아쉬운 때이다.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가정을 지키기는 힘들다. 그래서 가정기도가 더욱 필요하다.
1. 언제나 갈 데까지 가 보는 국민성?
뭔가 시작을 하면 죽기 살기로 힘을 모아 해 내고야 마는 저력, 어떤 새로운 일이 시작되면 끝간 데 없이 한없이 내 닫는 행태(行態)가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어떤 외국인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뜻이 모이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폭발적임 힘을 발휘하는 것이 때로는 우리 국민의 냄비 같은 약점이기도 하지만, 또한 무서운 저력이란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비단 어떤 행사를 치르거나 공사를 하는 데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사회흐름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혼 문제만 해도 그렇다. 1990년 한 해에 399,300건의 혼인에, 45,700건의 이혼이니 그 정도가 11.4%에 불과했다. 그런데 2001년도엔 320,100건의 결혼에 135,000건의 이혼이니 무려 42.1%로 대폭 늘었다. 2002년도엔 43.7%이니, 이제 영국을 제치고 미국 다음으로 이혼율이 높은 나라가 되었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이다. 우리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는 말도 될 것이다. 이혼의 급증에는 청소년문제와 노인문제도 함께 얽혀있는 것이 사실이다. 흔히 말하는 탈선 청소년, 문제 청소년은 바로 문제의 어른들이 만든 문제가정에서 양산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인간은 단순히 등 따뜻하고 배부르다고 행복해 질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인간은 정서적인 존재이다. 서로에 대한 진한 관심과 사람으로 서로를 감싸고 아끼는 가정이야말로 경쟁 치열한 사회에서 받은 모든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힘을 축적해 주는 유일한 곳이다. 그래서 가정을 '보금자리' 또는 '안식처'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그 가정마저 붕괴 위험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어디서 인간다움을 지키며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인가? 참으로 참담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2. 참 사랑은 무엇인가?
부부로 살면서 얼마만큼만 상대방에게 보여주고 얼마쯤은 숨기고 살수가 없다. 서로의 모든 면을 그 약점과 함께 열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혼생활을 5-10년 하다보면 "내 남편(아내)의 이런 저런 점은 그래도 참을 수 있지만, 이 한가지만은 꼭 고쳐주었으면 좋겠다." 싶은 결점이 누구에게나 발견된다. 그러나 그 사람(남편이나 아내)은 죽었다 다시 깨어난다 해도 결코 그 결점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누구에게나 있는 한계이다.
"사랑은 '너'가 '나'와 다를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물론 가정을 이루고 사는 부부이기에 아주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그러나 큰 문제가 아닐 때 서로의 자기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사람은 대선 때 부부간에 서로 지지하는 후보가 달라 그 때문에 옥신각신하다 헤어졌다고 한다.
아무리 부부라 하더라도 매사에 100% 나와 꼭 같기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예속이고, 상대를 한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물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를 숨막히게 하는 것이다. 사고방식이나 생활 습성 그리고 가치관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용납해야 한다.
사랑은 배려이다. 서로를 맞추어가려는 지속저인 노력이 필요하다. 보다 나은 아내, 보다 좋은 남편이 되고자 하는 노력, 자기 성장과 발전을 위한 자신과의 싸움을 포기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나는 성격이 급해서' '그럴 수도 있지 뭐' '나는 그렇게는 못살아' 하는 자세로 자신을 무조건 정당화하려고 할 때 신뢰는 급격히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일찍이 사회 심리학자인 '에릭 프롬'은 "누구와 결혼하느냐 보다 어떤 마음 자세로 결혼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누구나 깊이 음미해 볼 말이 아닐 수 없다.
3. 가정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이혼의 증가와 함께 동거와 재혼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동거의 천국이라고 하는 프랑스나 구라파의 여러 나라엔, 결혼은 하지 않고 일생에 3-4회 '동거'와 '갈라섬'을 되풀이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엄마와 아빠가 서로 다른 이상한 가정에서 심리적인 혼란 속에 자라나는 아이들의 문제도 큰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중년 이후 갈라선 이들은 대부분이 새로운 동거의 대상을 찾지 못한 채 고독하고 궁상맞기 이를 데 없고 쓸쓸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젊은 날에 누린 자유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교회와 사목자는 물론 모든 신자들이 가정의 '하숙화'를 막고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교회의 ME교육의 활성화, 가정기도의 정착, 부부클리닉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때이다. 서로를 참아주고 감싸줄 수 있는 힘은 기도에서 나온다.
성 아우구스띠누스는 "가장(家長)은 가정교회의 주교이다."고 하셨다.
가장들이 가정기도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