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나 잡고 있는 가짜 어부들

2010. 4. 9. 08:12카톨릭 이야기/영성의 샘물

 

 

 

 

 

 

 

 

 

 

 

 

 

 

 

 

 

고기나 잡고 있는 가짜 어부들

- 양옥자 수녀-

 

밤 동안 제자들의 모든 인간적 수고와 능력이 다했을 때, 예수님이 아침빛처럼 홀연히 나타나 호숫가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계신다. 사도들이 복음 선포라는 본연의 사명을 뒤로하고고기나 잡고있는 차선의 삶 가운데서 아무 결실 없이 수고만 하다가 지쳐 있을 때, 그분은 말없이 나타나 그들을 바라보고 계신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듯이 정체성을 잃고 사는 삶 속에서 어떤 맛과 향이 날 수 있으랴?
필리핀에서 현지 양성자들과 지낼 때의 일이다. 모든 것을 외부 원조에만 의지하던 빈민가 아이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 생활비를 충당하기 힘들어 여러 방법을 찾던 중, 한 예비 수녀님이 심각하게 말했다. 이렇게 어려운데 모든 것을 중단하고 나가서 돈이라도 벌어 와야 되지 않느냐고. 나는 어려움에 함께하려는 마음은 기특하지만 그런 방법은 아니다 싶어서 말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일을 하겠다는 우리가 그 일을 접고 단지 생계나 돈을 위해서 밖으로 나간다면 그 순간 우리 집은 진짜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을 돌보고 그분의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이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나의 확신처럼 급식소는 지금까지 문을 닫지 않고 집에서는 하루 한 끼도 먹기 힘든 아이들에게 일용할 양식과 필요한 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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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잠시 정체성을 잃고 옆길로 새어 힘들게 걷고 있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그렇게 바라보고 다시 본연의 삶으로, 정체성의 회복으로 기꺼이 이끌어 주신다.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우리의 참된 삶과 알찬 결실이 있음을 다시 확고히 해두면서, 천상잔치의 예표인 주님 손수 마련하신 아침 식사에 우리를 초대하고 부활하신 당신을 거듭 확인시켜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