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 세계유산 문화재탐방] 경주 삼릉

2011. 4. 12. 05:58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경주 세계유산 남산 문화재탐방]

 

남산에는 왕릉 13기, 산성지(山城址) 4개소, 사지(寺址) 147개소, 불상 118체, 탑 96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등 672점의 문화유적이 남아 있으며, 이들 문화유적은 보물 13점, 사적 13개소, 중요민속자료 1개소 등 44점이 지정되어 있고, 2000년 12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보호받고 있다.

남산은고위산(494m)과 금오산(468m) 2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남북 8㎞, 동서 4㎞의 크기이며 완만한 동남산과 골이 깊고 가파른 서남산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40여 계곡이 있고, 동쪽에는 낭산(狼山)·명활산(明活山), 서쪽에는 선도산(仙桃山)·벽도산(碧桃山)·옥녀봉(玉女峰), 북쪽에는 금강산(金剛山)·금학산(金鶴山)이 솟아 있다. 뿐만 아니라 토함산(吐含山) 줄기가 동해를 막는 성벽 구실을 하고 있어 남산은 옛 서라벌을 지키는 요새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였다.

경주 남산은 신라시대의 불교유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교가 신라에 전파되면서 숭산신앙(崇山信仰)·암석신앙(巖石信仰)과 연관된 불교문화는 남산에 집중,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절터 112군데(암자터 포함), 석불 80체, 석탑 61기, 석등 22기 등의 유물·유적이 발굴되었다. 남산은 또한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탄생설화가 있는 경주 나정(蘿井:사적 245), 신라 최초의 궁궐터인 창림사(昌林寺) 유적, 서쪽 기슭의 포석정지(鮑石亭址:사적 1),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화랑 김유신의 효와 충절을 엿볼 수 있는 경주천관사지(天官寺址:사적 340)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 개국 이래 줄곧 신라인과 호흡을 같이하며 신성시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유물·유적으로는 청동기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간돌도끼[磨製石斧]·간돌칼[磨製石刀]·홈자귀[有溝石斧]·방적차(紡績車) 등과 함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또 진평왕(재위 579∼632) 때에 쌓은 남산신성(南山新城)과, 진덕여왕(재위 647∼654) 때 쌓은 것을 문무왕(재위 661∼681) 때 보수한 남산성(南山城:사적 22), 김시습이 기거하면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집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썼다는 용장사(茸長寺)가 있다.

 

배리삼존불→삼릉→석조여래좌상→마애관음보살입상→석조여래좌상→

상선암→용장사지→ 삼층석탑→삼륜대좌불→용장계곡→용장마을

 

위의 코스대로 남산 문화재 탐방을 시작합니다.

소요시간 (5~6시간)

 

 

 

 

 

 

 

이 계곡 북쪽 언덕에는 많은 무덤들이 줄지어 있었던 흔적이 있는데 지금은 세 개의 릉만 남아 있어 삼릉(三陵)이라 부르고 있다. 제일 앞의 무덤은 신라 54대 경명왕릉(景明王 : 917 ~ 924)이라 전해 오는 릉이고 가운데 것이 53대 신덕왕릉(神德王 : 912 ~ 917) 이라 전해 오는 릉이다.

맨 뒤의 것은 8대 아달라왕릉(阿達羅王 : 154 ~ 184)이라 전해 오고 있는데, 초기 임금님의 릉이 왜 이 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무덤들은 원래 봉분 둘레에 호석(護石)을 쌓고 큰 자연암석(自然岩石)을 둘러놓은 태종무열왕릉(太宗武烈王陵)과 같은 양식 이었는데 지금은 다 묻혀 원형토분(圓形土墳)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앞에 있는 경명왕릉에서는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삼릉은 소나무숲의 명소 많은 사진작가들이 즐겨찾는 곳입니다.

경애왕릉부터 삼릉까지의 소나무 숲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숲입니다.

 

 

 

 

 

 

 

 

 

 

 

 

 

 

 

 

 

 

 

 

 

 

 

삼불사로 가는 길엔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길가에 불상(약사여래불)의 조각들을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