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

2011. 4. 26. 09:43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은 원래 성종(9대)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1593년(선조 26)부터 선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다가 광해군이 1611년(광해3)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던 이곳에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를 붙여 주었다. 그 후 광해군은 1615년(광해7)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고 경운궁은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경운궁은 1897년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 한국 근대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전성기 때의 경운궁은 현재 넓이의 3배에 달하는 큰 궁궐이었다. 현재의 미국대사관저 건너편 서쪽에는 중명전을 비롯해 황실 생활을 위한 전각들이 있었고, 북쪽에는 역대 임금들을 제사 지내는 선원전이 있었으며, 동쪽에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환구단을 설치하여 황제국의 위세를 과시했다. 그러나 고종황제가 황위에서 물러나면서 경운궁은 선황제가 거처하는 궁으로 그 위상이 달라졌고 이름도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궐내각사 일부와 환구단이 철거되었고 이 지역은 대한제국의 상징 공간으로서의 위상을 잃게 되었다.

고종이 승하한 뒤 1920년부터 일제가 선원전과 중명전 일대를 매각하여 궁역이 크게 줄어 들었으며, 1933년에는 많은 전각들을 철거하고 공원으로 조성하여 일반에 공개했다. 이처럼 덕수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원형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으나, 임진왜란과 대한제국의 역사적 격변을 겪은 궁궐로 국난 극복의 상징적 공간이자 그 중심이었다.

덕수궁 홈페이지~http://www.deoksugung.go.kr/

 

 

 

 

 

 

대한문은 원래 정전(殿)인 덕수궁 중화전의 (殿)의

 정면에 있었던 것을 나중에 동쪽으로 옮긴 것이다.

1971년 원래의 자리에서 33m물러난 현재의 자리로 옮겼고

 이후 몇차례 보수를 하다가 2005년 완전 해체 보수 하였다.

 

 

 

 

 

 

 

 

 

 

궁궐의 안쪽에서 본 대한문의 모습입니다.

대한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쪽에

1986년 발굴하여정비한 금천교가 보입니다.

 

 

좌우측에 금천교 난간이 보입니다.하지만 금천은 연결되어 있지않습니다.

 

 

 

 

 

 

대한문을 들어서면 죄측에 휴게소(매점과) 연못이 있습니다.

늦은봄의 풍경들을 담아 봅니다. 목단 꽃망울 과 철쭉꽃등

 

 

 

 

 

 

 

 

 

단풍잎이 푸른빛을 자랑합니다.

 

 

 

 

 

 

 

 

 

벚꽃 아래로 궁궐의 모습이 보입니다.

 

 

 

 

 

 

 

 

 

 

 

 

 

라일락 꽃향기를 지나칠수 없어 한참을 머뭅니다.

 

 

 

 

 

 

 

단풍나무가 붉은잎과 꽃을 피워냅니다.

 

 

 

 

 

연못가엔 철쭉 꽃봉우리가 터지기 시작하고 벌써 녹음이 가득하여 다가올 여름을 예고 하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