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행] 사적제 290호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 계산성당(桂山聖堂)

2011. 5. 6. 20:55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천주교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 계산천주교회, 통칭 계산성당(桂山聖堂)은

대구광역시 중구에 위치하며 본당이 처음 건축된 것은 1899년으로 당시에는 한옥으로 지었으나

1901년 지진으로 이 성당은 전소되고 그 위치에 현재의 서양식 성당을 세워,1902년 12월 3일 첫 미사를 드렸다.

현재의 서양식 성당 또한 경상도 전역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점이 인정되어 현재 대한민국의

사적제 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1911년 대구대목구 설정과 함께 주교좌 성당으로 결정되었다.

 

 

 

 

 

 

 

 

대성당 축성식 거행

 

 

1903년 9월 12일 로베르신부는 뮈델주교의 집전으로 11월 1일 대구대성당 축성식이

 거행될 것이라고 알리면서 각 지역 선교사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초대장을 보냈다.

"루르드의 성모성당 축성은 오는 11월 1일 뮈델 주교님의 주례로 거행될 예정입니다.

 나는 이 축성식에 참석하고자 하시는 모든 신부님들을 기쁜 마음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이 공사가 이루어지도록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우리를 격려하는 뜻으로 기도해 주시도록 청합니다."

뮈델주교는 로베르신부가 첫 번째 성당인 한국식 십자형 성당의 소실로 두 번째로

더 휼륭하게 지은 두 개의 종탑이 있는 서양 고딕식 대구 대성당 축성식을 집전하고

 미사가 끝난 후에는 대구 전역에 울려퍼질 종을 축헝하였다.

 두 개의 종은 서상돈 회장과 김절아 여사가 각각 한 개씩 기증해

이들의 본명에 따라 아우구스티노와 젤마나로 명명한 바 있다.

모든 성인의 대축일에 거행된 대구 대성당 축성식에는

영호남지역 선교사들이 대부분 참석하였고,

사방 2백리 안에 있는 수많은 신자들이 이에 참여하려고 대구로 모여 들었다.

 이 축성식에 주민들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몰려오고,

대구 감사와 지역 유지들도 초대에 응해서 대구 전체의 축제날과 같았다

 

 

 

 

주교좌 성당으로 승격

 

대구대목구의 설정과 함께 대구본당은 주교좌성당으로 승격되어

 명실공히 영호남지방의 중심 교회로서 주민들을 위한 지역교회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대구대목구의 설정 이전에는 대구본당이라 지칭하고,

 설정 이후 주교좌성당으로 승격되면서 이를 구별하기 위해 계산본당이라 개칭한다

계산본당이 주교좌성당으로서 새롭게 출범하던 1911년 당시에 대구대목구는

신자 26,004명과 본당18개처 본당의 본당신부들은 계산본당의 로베르신부.

 부산 본당의 줄리앙 신부. 가실 본당의 소세 신부. 안대 본당의 서병익 신부.

 전주 본당의 보두네 신부. 되재 본당의 베르몽 신부. 수류 본당의페네 신부.

나바위 본당의베르모렐 신부. 목포 본당의 트르뇌 신부. 제주 본당의라크루 신부.

목포 본당신부. 마산 본당의 무세 신부. 김천 본당의김성학 신부. 소천 본당의김명제 신부.

용평 본당의 김승연 신부. 어은동 본당의 김양홍 신부. 신성리 본당의 미얄롱 신부.

 양천 본당의 카닥스 신부. 서홍리 본당의 타케 신부 등이었다

 

 

 

 

성당에는 혼인성사가 행중입니다.

이 성전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1951년 서품을 받았습니다.

또한 1050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렸다.

 

 

 

 

 

 

 

 

 

 

 

1882년말 충청도와 경상도의 담당사제로 파견된 로베르 신부는 이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43개 공소를 사목하고 있었는데, 1886년초 대구본당 초대 주임사제로 임명되자 대구 읍내에서는 공공연하게 포교활동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고 신나무골에 임시거처를 정하게 되었다.
칠곡군 지천면 연화동에 있는 신나무골에는 1815년 을해교난과 이이전 집안이 이곳으로 이사와 교우촌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1886년초부터 로베르신부는 이호연 복사와 함께 신나무골에 머물며 경상도 전역에 걸쳐 있는 사목 관활구역을 방문하면서 신자 1,700명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성인 158명에게 세례성사를 베풀었다.

로베르신부가 대구를 자주 방문하고 성사집행을 하게 되면서 대구신자들의 열성이 더욱 고조되어 지역민을 입교시키는데 힘써 노력하고, 집안에서 미신적인 물건들을 대부분 불태워 버리며 죄지을 기회가 될 만한 사람들과는 애써 관계를 끊기도 하면서 대구본당의 터전을 다져 나갔다.

 

 

 

초대주임신부 김보록(로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