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연주대(戀主臺)와 연주암

2011. 11. 16. 20:00전국 절집이야기/사찰(寺刹) 이야기

관악산 연주대(戀主臺)와 연주암

 

관악산의 봉우리 중에 죽순이 솟아오른 듯한 모양을 한 기암절벽이 있는데,

그 위에 석축을 쌓고 자리잡은 암자를 연주대라 한다.
원래는 의상대사가 문무왕 17년(677)에 암자를 세우면서 ‘의상대’라 이름했었는데,

고려 멸망 후 조선을 반대하며 고려에 충성을 다하던 유신들이 이곳에 모여,

멀리 개경쪽을 바라보며 고려를 그리워하여 연주대(戀主臺)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셋째왕자 충녕대군을 장차 태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를 눈치챈 첫째 양녕과 둘째 효령대군이 궁을 나와 관악산에 입산 수도하면서,

이 연주대에 올라 왕궁을 바라보며 왕좌를 그리워하였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연주대에 얽힌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내용인데,

이것은 연주대 주변 경관이 매우 뛰어난 절경인데다 한눈에

멀리까지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의 건물은 3평 남짓한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곳에는 석가모니와 나한들을 모시는 불당인 응진전이 있다.

 

 

 

 

 

 

 

 

 

 

 연주대(戀主臺)의 석가모니와 나한들을 모시는 불당인 응진전

 

 

 

 

 

 

 연주암

연주암은 대웅전 앞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연주암은 통일신라 문무왕 17년(677) 의상대사가 ‘관악사(冠岳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의 단장을 거치고, 양녕대군과 효녕대군이 머물면서 연주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탑은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형태이다. 바닥돌에는 연꽃을 둘러 장식하고, 기단 네 모서리와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에 1층은 4단, 2·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어 규칙성을 잃고 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 위로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 모양의 장식), 보주(寶珠:구슬 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정연하고 균형 잡힌 안정감을 준다. 조선 태종의 첫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둘째 왕자 효령대군이 셋째 왕자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계승할 것을 부탁한 후 궁궐을 나와 이곳에 머무르며 수도할 때, 효령대군이 세운 탑이라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기단이 1층이고, 탑신의 지붕돌이 두툼하고 받침수가 줄어드는 등 조성수법에 있어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