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여행] 월미도문화의거리

2011. 12. 11. 06:30전국 방방곡곡 여행지/경기도 여행지

 

[인천여행] 월미도문화의거리

 

월미도(月尾島)는 인천광역시 중구에 속해 있는 섬이었다.

현재는 섬과 육지 사이가 메워졌다.

섬의 생김새가 반달의 꼬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대한제국 때에는 일본 해군 기지와 러시아 석탄창고 등이

잇따라 이곳에 들어서면서 열강들이 치열한 세력다툼을 벌였다.

1886년 병인양요 때 인천 앞바다에 정박했던 프랑스 함대의

대장 이름을 따서 외국 지도에 로즈 섬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1900년 송정섭이 월미도의 개간권을

농상공부의 허가를 받아 일본인 요시가와에게 개간권을 팔아 넘겼으며,

요시가와는 월미도 주민을 강제로 설거 시키자 조선 정부는 송정섭을 체포하였고

매각 대금을 일본 공사관에 전달하고 개간권의 반환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요시가와는 응하지 않고 1904년 8월에 일본군이 작전상 필요하다며 포대를 쌓았으며,

 1905년 5월 민가 80여 호를 철거하고 섬 전체를 점거하였다.

1923년 1킬로미터의 제방을 쌓으면서 육지와 연결되고

 이 때부터 유원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주로 일본인들이 사용하기 위하여 바닷물을 데워서

목욕을 즐기는 조탕, 별장, 요정, 해수풀장 등이 들어섰다.

1987년 7월 '월미도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 이래

문화예술 공연과 월미축제 등 각종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월미도의 비극의 역사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으로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

1950년 9월10일 미군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항공기들이 95개의 네이팜탄을

 월미도 동쪽 지역에 투하하고 기총소사를 하는 방식으로 9월13일 아침까지 계속됐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가 10명이고, 실종자와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을 포함하면

 실제 희생자가 1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진실화해위원회는 추산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미군이 민간인 희생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없이

월미도 전체를 무차별 집중 폭격한 것은 국제법 등에 위반된 작전이라며,

한국과 미국 정부가 협의해 희생자와 쫓겨난 피해 주민들에

 합당한 피해 보상과 귀향 대책을 취하도록 권고했다.

 

 

 

 

 

 

 

 

 

 

 

 

 

 

 

 

 

 

 

 

 

월미도 코스모스유람선

인천 월미도의 코스모스 유람선은 월미도를 출항해

영종도앞을 지나 인천대교를 조망하고 회항하여 

약 20km해상을 운항해 돌아오는 (1시간30분 소요)

유람선으로 12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4회 정기운행하며

요금은 성인 15,000원, 어린이 8,000원이다.

 

 

 

 

 

 

 

 

 

 

 

 

월미 마이랜드

놀이기구를 타는 것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바닷가를 따라 카페와 공연장이 늘어선 월미도에는

 바이킹 등을 타며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는 ‘비치랜드’,

 ‘월미 놀이동산’, ‘마이랜드’ 등 놀이시설이 영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