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기념물 제150호 진천 배티성지

2011. 12. 22. 18:00카톨릭 이야기/천주교 성지순례

 

충청북도 기념물 제150호 진천 배티성지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360번지 일원의 진천 배티 성지[鎭川 梨峙 聖地]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중요한 성지로 박해를 피해 숨어들은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1830년대에 敎友村이 형성되었으며, 1850년에는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한국 성명 安敦伊) 성인 주교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朝鮮敎區神學校가 자리를 잡았던 곳이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며 두 번째 신부인 崔良業(1821~1861년, 세례명 : 토마스) 신부를 비롯하여 프랑스 선교사 프티니콜라(한국 성명 朴德老) 신부와 페롱(한국 성 權) 신부가 1853년부터 1864년까지 배티 신학교 건물을 聖堂 겸 司祭館으로 삼았고, 1866년의 丙寅迫害 때에는 수많은 순교자가 배티와 인근 지역에서 탄생하여 殉敎者 墓에 안장되었다.
배티 성지에는 배티 성당[梨峙 聖堂]을 비롯해 周邊 地域은 天主敎 迫害期에 敎友村으로 形成되었으며, 殉敎者 墓들이 이 곳 저 곳에 位置하고 있다. 이 성지는 1958년부터 청주교구 관할이 되었으며, 1977년부터 청주교구장에 의해 성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1978년에 순교자묘가 단장되었고, 1997년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이 건립되었다.
2001年 2칸 규모의 木造草家로 再現한 朝鮮敎區神學校와 神學校 우측에 殉敎者 劉데레사墓가 있다.
훼손되지 않은 迫害期의 天主敎 敎友村터인 삼박골 敎友村터와 殉敎者 墓로 無名 殉敎者 14人 墓와 殉敎者 劉데레사 墓, 삼박골 母女 殉敎者 墓, 無名 殉敎者 6人 墓, 데레사 남편 殉敎者 墓도 있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교인 조선교구신학교 터와 무명 순교자 14인 묘 그리고 삼박골 모녀 순교자 묘를 지정 범위에 포함하였다.

 

 

 

 

 

 

 

 

 

 

 

 

 

 

 

 

 

 

 

 

 

 

 

 

 

 

 

 

 

 

 

 

 

 

 

 

 

 

 

 

 

 

 

 

 

 

 

 

 

 

 

 

 

 

 

 

배티성지는 제천시 베론성지, 괴산군 연풍 성지와 함께

 충북의 3대 천주교 성지로서 조선 후기 천주교 유입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자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1821∼1861) 신부 등이

배티 신학교 건물을 성당 겸사제관으로 삼았던 곳이다.

 

 

 

 

최양업 신부

15세 때 최방제·김대건 등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돼 1837년부터 마카오에서 본격적인 사제수업을 받았다.
1844년 신학공부를 마친 뒤 김대건과 함께 페레올 주교로부터 삭발례와 부제품을 받았다.

 이후 1846년부터 4차례에 걸쳐 귀국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상하이[上海]로 돌아왔다.

 1849년에 강남 교구장인 예수회원 마레스카 주교로부터 사제서품(司祭敍品)을 받아 김대건에 이어 한국의 2번째 신부가 됐다.
온갖 어려움 끝에 1849년 말 귀국한 뒤에는 조선 전교의 어려움과 선교사와의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시복(諡福)을 위한 순교자들의 자료를 수집하고 교우들을 위한 교리서를 편찬했다.

 천주교의 기본교리를 전달할 천주가사(天主歌辭)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귀국 후 12년에 걸친 힘겨운 사목활동 끝에 1861년 과로와 식중독으로 숨져 배론 신학교 산기슭에 안장됐다.

 

 

 

 

진천 배티성지 관광정보

주소~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471

홈페이지~http://www.baithi.org/

문의전화~043-533-5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