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고관들이 낚시를 즐기던 곳, 지수당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4호)

2012. 2. 5. 06:30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조선시대 고관들이 낚시를 즐기던 곳, 지수당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4호)

 

조선 현종 13년(1672)에 이세화(1630∼1701)가 지은 건물로 당시 고관들이 낚시를 즐기던 곳이다.
이세화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 폐위시 상소를 올렸다가 문초를 당하고 귀양을 가게 된다. 그 뒤 복직되어 공조·형조·병조·예조·이조판서 등을 두루 거쳤다.
지수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건물 앞뒤로는 세 개의 연못이 있었는데 하나는 매몰되어 지금은 두 개의 연못만 남아 있다.
연못 가운데에는 ‘관어정’이라는 정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빈 터만 남아 있다. 글출처~문화재청

 

 

 

 

 

지수당

 지수당 건물구조는 방형 초석 위에 각주(角柱)를 세운 목조와가로 팔작지붕으로 된 굴도리(둥근 도리)계 누각이다. 누각 앞에는 1714년(숙종 40) 이세화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비석이 있다.앞면에는 ‘부윤 이세화의 청덕민 선정비’라는 글이, 뒷면에는 ‘숭정 후 87년 갑오년 3월일립( )’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세화(李世華)

조선의 문신. 자는 군실(君實), 호는 쌍백당(雙栢堂)ㆍ칠정(七井), 시호는 충숙(忠肅). 본관은 부평(富平). 형조 정랑 계록(繼祿)의 증손자. 15세 때 백부의 양자로 들어갔으며 22세 상상(上庠)에 오르고, 1656년(효종 7) 문과에 급제,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仁顯王后)를 폐위할 때 서인(西人)으로 소를 올려 반대했다가 숙종의 노여움을 받고 철야 문초를 당한 후 정주(定州)로 귀양갔다. 1694년(숙종 20)크게 뉘우친 숙종으로부터 대사간ㆍ호조 판서로 뽑혔으나 사퇴하고, 후에 세자빈객(世子賓客)ㆍ공ㆍ형ㆍ병ㆍ예조 판서 등을 지냈다. 풍계(豊溪)의 충렬사(忠烈祠)에 모셨으며, 고향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지수당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4호)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124-1

경기도 광주시 문화공보과 031-760-4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