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1. 17:45ㆍ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의열사 (義烈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4호
이 고장 충신인 백제의 성충·흥수·계백과
고려 후기의 충신 이존오를 위해 부여현감 홍가신이 세운 사당이다.
후에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선비 정택뢰,
인조 (재위 1623∼1649)때 문신 황일호(1588∼1641)를 추가로 모셔
현재는 6명을 모시고 있는데, 해마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조선 선조 8년(1575)에 처음 지어 인조 19년(1641)에 새로 고쳐 지었으며,
고종 3년(1866)에 헐렸다가 그 뒤 다시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원래 용정리의 망월산에 있던 것을 1971년 현 남령공원으로 옮긴 것이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보수공사
의열사비 (義烈祠碑)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6호
의열사의 건립과정과 그곳에 모신 인물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비이다. 의열사는 조선 선조 8년(1575) 부여현감 홍가신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선조 10년(1577)에 임금이 이름을 지어 현판을 내렸다. 비의 형태는 네모진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의 내용에 의하면 이 고장 출신이었던 백제의 3충신(忠臣)인 성충, 흥수, 계백과 고려시대에 신돈을 탄핵하다가 물러난 이존오의 공로가 후대에 전해지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긴 홍가신이 사당을 지어 이들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후에는 조선시대의 정택뢰, 황일호를 모셨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경종 3년(1723)에 비를 세웠는데, 원래는 부여군 용정리 망월산에 있던 것을, 1971년 사당과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이 비는 의열사(義烈寺)가 조선(朝鮮) 선조(宣祖) 8년(1575) 부여현감(扶餘縣監) 홍가신(洪可臣)에 의하여 건립되어 배향(配享)하고, 후에 조선시대(朝鮮時代)의 현사(賢士) 정택뢰(鄭澤雷), 황일호(黃一皓) 선생(先生)을 1971년에 부여읍(扶餘邑) 용정리(龍井里) 망월산(望月山)에서 사우(祠宇)와 함께 현 위치로 옮겨진 것이다.
백제(百濟) 충신(忠臣)인 성충(成忠), 흥수(興首), 계백(階伯)과 고려(高麗) 충신(忠臣) 이존오(李存吾)를
추배(追配)하였다는 내용을 수록한 비이다. 비는 이간(李柬)이 쓴 것으로 경종(景宗) 3년(1723)에 세워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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