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교당[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6호]

2012. 11. 10. 23:41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천도교교당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6호]

 

 

 

천도교의 중앙교당으로 종교의식과 일반행사를 하는 곳이다.   천도교 3대 교주였던 손병희의 주관으로 1918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921년에 완공되었다. 교인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공사비로 충당하였는데, 공사비에서 남은 돈은 3·1운동 자금으로 사용하였다.

건물의 기초부는 화강석을 사용하고 벽은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쌓았다.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인데, 철근 앵글로 중간에 기둥이 없게 하였다. 또한 앞면에 2층 사무실을 탑 모양의 바로크풍으로 하여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에는 서울시내 3대 건물의 하나로 꼽혔으며, 교회당의 구조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을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선생의 주관으로 1918년에 시공하여 1921년에 완공한 천도교의 교당이다. 당시에는 서울시내 3대 건물의 하나로 꼽혔다. 건물의 기초부는 화강석을 사용하고 벽체는 붉은 벽돌로 쌓았으며 지붕은 맞배로 되어 있다. 탑의 지붕은 바로크풍으로 이루어 특이하다. 건축양식상 독특한 점이 많고 또 교회당 구조를 닮았으면서도 이와는 전혀 다른 맛을 지니고 있다. 글출처~문화재청

 

 

 

 

 

 

 

천도교(天道敎)는 조선 말기 1대 교조이자 순교자자인 최제우가 1860년에 서학, 즉 천주교에 반대하여 창시한 민족 종교인 동학을 1905년에 3대 교조 손병희가 개칭한 종교이다.  1860년을 포덕 원년으로 삼는다

1920년 대에는 신도 수가 300만 명에 이르렀으나,  1922년 손병희 교조의 죽음으로 신·구파로 갈리며 교세가 하락하기 시작한다. 1930년에 두 교파는 잠시 결합했다가, 1932년 다시 갈라서고, 1940년에 다시 합쳐진다. 1970년대 초에 천도교는 대통령 박정희의 지원을 받고, 용담정이 복구되고 수운회관도 세워졌으나, 당시 외무장관까지 지냈던 최덕신 교령이 월북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어 1997년에는 오익제 교령까지 월북하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현재 신도 수는 10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100여 개의 교구가 있다.

천도교의 최고 지도자는 교령이라 불리고, 대의원 회의에서 선출된다. 교령의 임기는 3년이고, 단임제이다. 현 교령은 2010년 취임한 임운길이다

 

 

 

 

 

 

 

 

 

 

 

 

 

 

 

 

 

 

 

 

 

 

 

천도교교당

서울 종로구  경운동 88

서울특별시 종로구 문화공보과 02-731-1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