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군사시설 수원 방화수류정

2013. 2. 19. 06:00전국 방방곡곡 여행지/경기도 여행지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군사시설 수원 방화수류정

 

 

조선 정조 18년(1794) 건립되었으며, 화성의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은

 전시용(戰時用)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조성된 건물이다. 수원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정명도의 시(詩) “운담풍경오천(雲淡風經午天), 방화류과전천

(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으며, 편액은 조윤형(曺允亨1725~1799)의

 글씨이다. 평면은 “ㄱ”자형을 기본으로 북측과 동측은 “凸”형으로 돌출되게

조영하여 사방을 볼 수 있도록 꾸몄으며, 조선 헌종 14년(1848)에

중수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되었다.

주변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정자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고, 다른 정자에서

 보이지 않는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의 특이성 등을

토대로 18세기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수원8경의 하나인 북수문(화홍문)

 

원래 수원은 지금보다 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화산아래가 그 중심이었다.

 조선 정조 13년(1789)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현 위치인

수원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그 아래에 있던 관공서와 민가들을 팔달산 아래로 집단 이전시킴으로써

 현재의 수원이 형성되었다.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정조 18년(1794)에

 축성공사를 시작, 2년 뒤인 1796년에 완공했다. 화성은 실학자로 불리우는 유형원과 정약용의 성설을

 설계의 기본 지침으로 삼아, 영의정 채제공이 성역을 주관하고 화성유수 조심태 등이 전력하여

 이룩한 것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에서 구조 배치가 가장 과학적이면서도 우아하고 장엄한 면모까지 갖추고 있다.

 특히 성곽의 축조에 석재와 벽돌을 병용한 것, 화살과 창검을 방어하는 구조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구조를 갖추고 있는 점, 용재를 규격화하여 거중기 등의 기계장치를 활용한 점 등에서

 우리나라 성곽건축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