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장군 곽재우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예연서원(禮淵書院)

2011. 7. 28. 00:00전국 문화재와 박물관/국가지정 문화재

홍의장군 곽재우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예연서원(禮淵書院)

 

예연서원(禮淵書院)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곽재우(1552∼1617)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곽재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조직하여

경상도 일대에서 활약하여 큰 공을 세운 인물로

붉은 옷을 입은 장군이라는뜻의 ‘홍의장군’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광해군 10년(1618)에 ‘충현사’로 처음 세웠고 현종 15년(1674)에 규모를 확장하여 서원의 모습을 갖추었다.

숙종 3년(1677) 나라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예연’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고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된 것을 1977년과 1984년에 걸쳐 복원하였다.

현재는 곽재우의 재종숙으로 정유재란 때 공을 세운 곽준의 위패를 추가로 모시고 있다.

 

 

 

 

 


경내 건물로는 사당과 강당 등 주요 건물과 제물을 준비하여 두던 고사, 숙소로 사용되던 동·서재 등이 있다.

사당은 곽재우와 곽준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강당은 유림의 회합장소와 교육 장소로

 사용하던 건물로 중앙에는 마루를 구성하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한 구조이다.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낸다.

 경내에는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비석이 있어 흥미롭다.

 

 

 

 

 

장판각

 

 

 

곽준(1551-1597)존재선생 실기책판(유형문화재제40호)

 

곽준(1551-1597)은 곽재우의 종숙이며 호는 존재, 임진왜란때 의병에 가담하여 공을 세우고

 27년(1594) 안음현감이 되어 황석산성을지키다가 성이 함락하자 가족과 함께 장렬히 전사하였다.

병조참의에 증직되고 나중에 충열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본 실기에는 숙종21년(16)에 편찬되었고 현존책판은

영조42년(1766)에 판각되어예연서원 장판각에 보존되어 있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충의문

 

 

 

사당은 곽재우와 곽준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곽재우의 재종숙으로 정유재란 때 공을 세운

곽준의 위패를 추가로 모시고 있다

 

사당(충현사)

 

 

 

 

 

곽준나무

 

 

곽준나무

수령이 300년 정도 된 이 은행나무는 본인은 물론 두아들과 며느리까지 함께 전사하여

일문삼강(一門三綱)을 이룬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곽준나무라 이름 지었다.

 

 

 

 

 

홍의장군신도비와 충렬공신도비

 

 

 

 

홍의장군신도비와 충렬공신도비

곽재우선생의 신도비는 영조37년년(1761)에 이곳에 건립되었고

곽준선생의 시도비는 인조12년(1634)에 현풍 대리(소레마을)에 세웠던것을

곽재우선생 신도비를 건립하면서 이곳으로 옮겨 함께 모시고 있다.

 

 

 

 

 

 

 

 곽재우장군나무

 

 

 

예원서원 앞을 마치 수문장처럼 지키고 서있는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는

임진왜란때 신출귀몰한 전략과 전술로 가는 곳마다 왜군을 무찔러 대승을 거둔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곽재우장군나무라 이름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