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5. 21:22ㆍ전국 절집이야기/사찰(寺刹) 이야기
[순창여행] 절 주위의 경치가 금강산과 비슷 하다는 강천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末寺)로, 887년(진성여왕 1)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인 1316년(충숙왕 3) 덕현이 오층석탑과 12개 암자를 창건하여 사세(寺勢)를 확장하였으며, 조선시대 1482년(성종 13)에는 신말주(申末舟)의 부인 설(薛)씨의 시주를 얻어 중창하였다.
1760년(영조 36)에 편찬된 《옥천군지》에는 명적암(明寂庵), 용대암(龍臺庵), 연대암(連臺庵), 왕주암(王住庵), 적지암(積智庵) 등 5개의 부속 암자가 남아 있다고 적혀 있다. 그 중 왕주암은 후삼국의 분쟁이 한창이던 때에 왕건이 이 암자에서 유숙하였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그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4년 태능(太能)이 중창하였다. 다시 1855년(철종 6) 금용당이 재건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칠성각, 첨성각, 보광전의 당우가 불탔다. 그뒤 주지 김장엽이 1959년에 첨성각, 1977년에 관음전을 신축한 뒤 비구니의 도량으로 전승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대웅전과 보광전, 관음전, 요사채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에 있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인 삼층석탑과 금강문(金剛門), 삼인대(三印臺:전라북도 유형문화재 27) 등이 있다. 또한, 삼층석탑 북쪽 약 1m 지점에는 중대석과 보주만이 남아 있는 석등이 있다.
자연암석으로 된 사각문인 금강문은 1316년 덕현이 절 주위의 경치가 금강산과 비슷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삼인대는 세 사람의 관인을 소나무에 걸었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또한 이 절에는 천년 묵은 지네와 거지, 승려, 그리고 돈에 얽힌 전설 등이 전해진다. 사찰 주변에는 강천산, 담양호, 강천산유원지, 금성산성, 내장산 등이 있다
강천사 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 1316년(충숙왕 3)에 덕현선사(德賢禪師)가 강천사 중건과 함께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조각하여 건립한 것으로 전하는 5층석탑이다.
건립연대에 대하여는 확실한 논거가 없다. 임진왜란 당시 사찰 경내의 모든 건물은 완전 소실되었으나, 이 탑만이 그대로 보존되어오다가 6·25동란 때 탑신석과 옥개석 일부가 총탄에 파손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석탑은 전형적인 기단을 갖추지 못하고 1자 정도의 두툼한 1매의 단일석으로 기단을 대신하고 있다. 그 위로 층마다 각각 1매의 돌로 탑신과 옥개를 만들어 중첩하였다. 각 층의 탑신석에는 모두 모서리기둥[隅柱]을 얇게 새겼는데 4층의 탑신석은 체감비로 보아 원래의 것이 아닌 것 같다.
두툼한 각 층의 옥개석은 반전이나 우동(隅棟: 옥개석의 귀마루)의 표현이 거의 없고, 2단의 층급받침을 새겼으며 하부에 물끊기 홈이 없다. 낙수면은 급한 편이고 윗층의 탑신을 받치기 위한 탑신받침형 몰딩(moulding: 테두리장식)이 마련되어 있다.
상륜부는 노반(露盤)·복발(覆鉢) 등을 얹고 수련으로 짐작되는 부재가 올려져 있다. 결국 12개의 석재로 탑 전체를 이룬 셈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가늘고 긴, 세장형 탑으로 고려 중기 이후 한국 석탑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형탑이다.
망배단
순창삼인대 (淳昌三印臺)
조선 연산군 12년(1506) 훈구세력인 성희안과 박원종이 임사홍, 신수근 등과 결합하여 포악한 정치를 거듭하던 연산군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중종반정이 성공하자 공신들은 중종의 부인인 신씨를 역적의 딸이라 하여 왕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장경왕후 윤씨를 왕비로 맞이하였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군수인 김정과 담양부사 박상, 문안현감 유옥 등이 결의하여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난 단경왕후 신씨를 다시 왕비로 모시자는 상소를 올렸다. 이들은 관직에서 쫓겨날 것과 죽음을 각오하고 관직을 표시하는 도장(職印:직인)을 소나무가지에 걸었다. 그 후 이곳에 비각을 세워 삼인대라 하였다.
조선(朝鮮) 연산군(燕山君) 12년(1506),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성공된 후 공신들은 왕비(王妃) 신씨(愼氏)를 역적 신수근(申守勤)의 딸이라하여 폐출(廢出)하고 장경왕후(章敬王后)(1491∼1515) 윤씨(尹氏)를 왕비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장경왕후는 왕후가 된 지 10년만인 중종 10년(1515)에 돌아가셨다. 이 소식이 전하여지자 당시 순창군수(淳昌郡守) 김정(金淨), 담양부사(潭陽府使) 박상(朴祥), 무안현감(務安縣監) 유옥(柳沃) 등이 회동, 결의하여 폐출하였던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 복위상소(復位上疏)를 올렸다. 이들은 관직(官職)으로부터의 추방과 죽음을 각오한 나머지 직인(職印)을 소나무가지에 걸었다. 그 뒤 이곳에 비각(碑閣)을 건립하고 삼인대라 하게 되었다.
강천사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998
063-652-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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