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좋은글과 시/좋은글과 시(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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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2005.09.20 -
내가 좋아한 바다 / 도종환
신진도항 젊은 날 내가 좋아한 바다는 바람이 차고 쓸쓸한 겨울바다였다 어촌 사람들의 가난한 흔적만 남고 어지러운 발자국들은 말끔히 씻겨나간 작고 조용한 바다였다 해송을 끼고 활처럼 굽은 해안선 허리를 따라 걸어갔다 오는 동안 육신과 마음이 고요해지고 몇 마리 마른 물고기..
2005.09.16 -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 류시화
주문진항 넌 알겠지 바닷게가 그 딱딱한 겁질 속에 감춰 놓은 고독을 모래사장에 흰 장갑을 벗어 놓는 갈매기들의 무한 허무를 넌 알겠지 시간이 시계의 태엽을 녹슬게 하고 꿈이 인간의 머리카락을 희게 만든다는 것을 내 마음은 바다와도 같이 그렇게 쉴새없이 너에게로 갔다가 다시 ..
2005.09.10 -
나의 별이신 당신에게 / 이해인
주문진 그렇게도 멀리 살으시는 당신의 창가에 나를 기대이면 짙푸른 始原의 바다를 향하여 열리는 가슴 구름이 써놓은 하늘의 시 바람이 전해온 불멸의 음악에 당신을 기억하며 뜨겁게 타오르는 작은 화산이고 싶습니다 내가 숲으로 가는 한 점 구름이었을 때 더욱 가까웁고 따스했던 ..
2005.09.09 -
바다에서 쓴 편지 이해인
남애항 짜디짠 소금물로 내 안에 출렁이는 나의 하느님 오늘은 바다에 누워 푸르디푸른 교향곡을 들려주시는 하느님 당신을 보면 내가 살고 싶습니다 당신을 보면 내가 죽고 싶습니다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당신을 맛보게 하는 일이 하도 어려워 살아갈수록 나의 기도는 소금맛을 잃어갑..
2005.08.20 -
이순간
하느님이 인간을 빚을 때의 일이다. 하느님은 일을 거들고 있는 천사에게 일렀다. "양쪽에 날이 잘 선 비수와 독약과 사랑약을 가져오너라." 천사가 그것들을 준비해 오자 하느님은 비수의 한쪽 날에는 독약을 바르고 다른 한쪽 날에는 사랑약을 발랐다. 그리고는 그 비수의 형태를 없게 만들어서는 인..
2005.08.18